취미

[스탠리 패러블 : 울트라 디럭스] 내용 해설! (Part.1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고찰의 우화)

RiELL V. 2022. 10. 23.
 

The Stanley Parable: Ultra Deluxe on Steam

The Stanley Parable: Ultra Deluxe is an expanded re-imagining of 2013's The Stanley Parable. You will play as Stanley, and you will not play as Stanley. You will make a choice, and you will become powerless. You are not here to win. The Stanley Parable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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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다. 왜냐고?
설명하면 감상을 전부 망칠 것이다. 그저 날 믿어라.

-RockPaperShotgun 리뷰

 

이번 글에서는 기존 게임계의 패러다임을 깨고 역사에 한 획을 그으며 세계 최초의 메타픽션 장르로서 새로운 지평을 연 게임, <스탠리 패러블(The Stanley Parable, 스탠리 우화)>을 해설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다.

 

스탠리 패러블은 2011년에 <하프 라이프>의 모드로서 첫공개되었으나 추후 2013년에 HD 리메이크판이 발매되고, 그리고 2022년에 와서 확장판인 울트라 디럭스 판이 발매되었다.

 

해설을 시작하기 이전에 혹시 2013년작 HD 리메이크판의 데모판을 플레이해 본 적이 없다면, 반드시 해보기를 바란다.

짧게 20분 분량인 데다 무료이고, 내용도 본편이랑 완전히 달라서 대충 스탠리 패러블이 어떤 분위기인지 파악하는 데 아주 좋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데모 링크 : 

 

The Stanley Parable on Steam

The Stanley Parable is a first person exploration game. You will play as Stanley, and you will not play as Stanley. You will follow a story, you will not follow a story. You will have a choice, you will have no choice. The game will end, the game will n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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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 한글패치 링크 :

 

The Stanley Parable 한글 패치

<The Stanley Parable> (더 스탠리 패러블) 게임 <더 스탠리 패러블> 데모 버전과 정식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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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인 Part 1에서는 울트라 디럭스의 새로운 콘텐츠에 진입하기 이전에 볼 수 있는, 2013년작 HD 리메이크판에도 있었던 내용들을 해설해 보겠다.

 

[ Part.1 ]

~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고찰의 우화 ~

 

 

[스탠리 패러블 : 울트라 디럭스] 유저 한글패치 공개! (+ 텍스쳐 한글화 포함)

(스탠리패러블 텍스트 로고는 내가, 전체적인 포스터는 M3님, 머그컵과 모니터 화면은 로코정 님께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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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항!
이하의 내용에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가득하다. 앞으로 게임을 직접 플레이할 예정이라면 절대로 읽지 말 것.
게임을 전부 플레이하고도 '그래서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이고, 뭐 하는 게임인데?' 하며 이해하는 데 어려워하시는 분들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 해설이다.
게임의 연출이 어느 정도 난해하고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기에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으므로 나한테 뭐라 하지 말길 바란다.
엔딩 해석의 경우 게임을 이해하는 데 큼직한 부분을 차지하는 엔딩만 다뤘다. 실제 게임에는 이보다도 훨씬 더 많은 엔딩이 존재한다.

 

목차

     

    [The Stanley Parable] 프롤로그

    스탠리 패러블은 다음과 같은 오프닝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스탠리라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스탠리는 큰 건물에 있는 회사에서 427번 직원으로 일했습니다.

    427번 직원의 업무는 간단했습니다. 427호실 책상에 앉아 키보드의 버튼을 누르는 것이었죠.

    책상 위의 모니터를 통해 어떤 버튼을 누를지, 얼마나 오래 누를지, 어떤 순서로 누를지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이것이 427번 직원이 매일, 매달, 매년 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일을 고리타분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스탠리는 지시가 내려오는 매 순간을 즐겼답니다. 마치 그가 이 업무만을 위해 만들어진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요.

    그리고 스탠리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스탠리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리고, 결코 잊지 못할 일이었죠.

    스탠리는 책상 앞에서 거의 한 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모니터에 단 하나의 지시 사항도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스탠리 앞에 나타나 지시를 내리거나, 회의를 소집하거나, 심지어 인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몇 년을 일했지만, 이렇게 완벽한 고립상태는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충격을 받아 얼어붙은 상태에서, 스탠리는 오랫동안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그는 책상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위의 내레이터 대사가 끝나면, 플레이어에게 조작이 넘어가며 게임이 시작된다.

     


    Chapter 0. 게임의 제목, '스탠리 우화(The Stanley Parable)'

    게임의 내용을 해석해 보기 전에, 먼저 게임의 제목인 'The Stanley Parable'의 의미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먼저 '우화(Parable)'의 개념부터 정확히 알아보자. 이 개념이 '스탠리 패러블'이라는 게임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표준국어사전에 따르면 '우화'란 문학의 종류로서,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솝 우화>로, '개미와 베짱이'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여우와 두루미'와 같이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일종의 비유로서 풍자하며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문학의 형식이 바로 '우화'이다.

    여러분은 '게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타인과 경쟁해서 승리하는 것? 단순히 프로그램 속에 설계된 난관을 헤쳐 나가고, 적을 무찌른 뒤 이야기의 결말에 도달하거나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

    이처럼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의문, 그리고 고찰을 담아 '스탠리'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우화가 바로 '스탠리 패러블'이다.

     

    위에 서술했던 프롤로그의 내용만 들었을 땐 '뭐 대충 회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러 다니는 게임이겠네' 싶겠지만, 이 게임의 제목이 '스탠리 우화'인 만큼, '게임'이라는 매체의 형식을 빌린 비유풍자를 담고 있다.

     


    Chapter 1. 자유 엔딩

     

    동료들이 모두 사라졌군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스탠리는 회의실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단순히 회의 알림을 놓친 걸지도 모르니까요.

     

    사무실에서 밖으로 나와 내레이터를 대사를 따라 회의실을 찾으러 계속 이동하면, 두 개의 문이 있는 방으로 진입하게 된다.

     

     

    스탠리가 두 개의 열린 문 앞에 섰을 때, 그는 왼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상하다. 나는 아직 두 개의 문 앞에 서 있을 뿐인데, 게임의 내레이션은 내가 이미 왼쪽 문으로 들어갔다는 대사를 이미 뱉어버렸다.

    하지만 뭐 보통 일반적인 게임 플레이 루트려니, 하며 일단 정석 플레이를 위해 내레이터의 지시를 계속 따라보기로 한다.

     

     

    그러나 내레이터의 지시를 따라갈수록 중간중간 다른 길로도 갈 수 있는 갈림길이 수차례 보이곤 해서 다른 길로 가보고픈 욕구를 계속해서 부추긴다.

    심지어는 중간에 스토리와 설정상 스탠리가 알 리가 없는 사장실의 비밀 장소로 통하는 문의 비밀번호를 내레이터가 넌지시 알려주기도 한다.

     

    그렇게 미심쩍긴 하지만, 내레이터의 대사를 따라서 계속 깊숙한 곳으로 이동해 보기로 한다.

     

     

    모니터에 전원이 들어오고, 그것들의 진정한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각 모니터마다 이 건물 안 직원들의 번호가 붙어있었습니다. 스탠리의 동료들이었죠.
    수많은 개인의 삶이 화면 속의 영상으로 축소되어 있었고,
    그중 한 명이었던 스탠리 역시 아무런 자유의 의미가 없는 이곳에서 영원히 감시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스탠리는 그동안 다른 직원들과 함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정신이 조종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담으로 이 게임에서 클릭할 때마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알 수 있는데, 각본가인 Davey Wreden 씨의 말에 따르면 이는 스탠리가 게임 내 회사의 상사에게는 물론, 오프닝 시퀀스에서 명령대로 버튼을 눌러대는 스탠리의 모습처럼 게임 화면 밖의 '플레이어'라는 존재에 의해 조종되고 감시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정신 지배 기관의 실체를 더 조사해 보기 위해 깊은 곳으로 내려가, 정신 지배 장치를 종료시킨다는 내레이터의 설명에 따라 OFF를 눌러보았다.

     

     

    그래요! 그는 승리했습니다.
    그는 기계를 쓰러뜨리고 타인의 조종에서 벗어난 겁니다. 자유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조종에서 벗어났다니, 스탠리는 내레이터의 지시뿐만 아니라 이미 '플레이어'라는 존재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스탠리가 정신 지배 기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플레이어의 제어마저 앗아가 버리며 자동으로 움직임이 조종되곤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난다.

     

    자유를 얻은 스탠리는 행복했다지만, 그 자유를 얻기까지의 과정은 순종만이 존재하는, 가장 모순으로 가득 찬 엔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명령대로만 움직여서는 결국 가장 뻔하고 재미없는 결말을 얻어낸 것과 다름이 없다.

     

    이를 진정으로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자유 의지 없이 명령대로만 따라 움직여 얻어낸 자유가, 진정으로 의미가 있거나 가치 있는 것일까?

    엔딩 이후, THE END IS NEVER이 무한히 반복되어 적혀 있는 로딩 화면이 뜨고 스탠리는 가장 처음에 있었던 장소인 자신의 사무실로 다시 돌아온다.

     


    Chapter 2. 폭발 엔딩

    이번에는 정신 지배 장치를 끄지 않고 ON을 눌러보았다.

    그러자 내레이터는 그러한 스탠리의 행동에 실망하며, 이야기의 노선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어버린다.

     

     

    스탠리는 문득 자신이 통신망의 비상 자폭 시스템을 발동시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적절한 DNA 식별 없이가 기계가 작동될 경우, 핵 기폭 장치가 폭발하여 건물 단지 전체가 제거됩니다.
    폭발까지 얼마나 남았을까요? 흠... 대략... 음... 2분입니다.

     

    그리고 타이머의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하며, 남은 시간 내로 뭔가 이 장소에서 문제를 해결할 만한 단서를 찾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곳저곳을 수색해 보지만, 내레이터는 그러한 스탠리의 허둥지둥한 모습을 보며 비웃기 시작한다.

     

     

    아, 이런. 뭐가 문제죠, 스탠리?
    당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러는 건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은 단지 저 타이머를 보고 이 방에 있는 무언가로 전원을 끌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건가요?
    그러니까 제 말은, 당신을 보세요.
    버튼에서 버튼으로, 화면에서 화면으로, 방 안에 있는 모든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눌러보고 있잖아요!
    숫자가 적힌 이 버튼들! 아냐! 여기 색깔이 있는 것들! 아니면, 이 큼지막한 빨간 버튼인가! 아니면 이 문!
    모든 것이! 무엇이든! 여기 있는 뭔가가 나를 살려줄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죠, 스탠리? 이 게임을 깰 수 있거나, 이길 수 있거나,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애초에 이곳에 당신이 있는 이유를 알기나 하나요?

     

    그렇다. 사실 이 정신 지배 장치에 있는 모든 오브젝트들은 전부 뭔가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꾸며놓은 장식일 뿐, 게임에선 실질적으로 그 어떠한 기능도 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린 게임을 하면서 다양한 장소를 마주하게 되지만, 그런 공간의 장치 또는 소품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적다. 마치 불이 나도 소화기 오브젝트에 따로 프로그램적으로 불을 끄는 설계를 넣어주지 않는 이상 그저 장식품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주변에 있는 것들이 그저 환경을 꾸며주는 겉껍데기일 뿐이란 걸 알게 되면, 게임 속 환상은 금세 거둬지고 공허한 감각만이 남게 될 뿐이다.

     

    그렇게 스탠리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핵폭발에 휘말려 그대로 폭사당하고 만다.

    여담으로 이 엔딩을 한 번 더 보게 되면 후반부의 내레이터의 대사가 다음과 같이 바뀐다 :

     

     

    하지만 당신은 정말로 해답이 있다고 믿고 있군요?
    절박하게 해답을 찾겠다고 이 부분을 도대체 몇 번이나 다시 플레이할 건가요?
    열 번? 백 번? 천 번? 정말로 두고 보고 싶네요, 당신이 실패할 때마다 매번 폭탄이 터지는 광경도 함께 말이죠.
    단지 당신과 저, 그리고 불덩이와 쇠붙이가 날아다니는 구역질 나는 폭발이, 계속, 또 계속 그리고 계속, 영원토록 반복될 겁니다.

    그리고 스탠리는 또다시 죽었답니다.
    그리고 스탠리는 또다시 죽었답니다.
    그리고 스탠리는 또다시 죽었답니다.

     

    이번에 퍼즐의 답을 찾지 못했으니 다시 한번 더 시도하면 폭발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플레이어들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조롱하는 대사를 뱉는 내레이터.

     

    실제로 이 폭발 엔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프로그램적으로도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해답이 정말로 있지 않을까 하며 계속 시도하다가 시간 낭비하지 말길 바란다.

     


    Chapter 3. 정신병 엔딩

    번에는 사장실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라가지 않고 내려가보았더니, 내레이터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다.

     

     

    어떤 생각이 스탠리의 뇌리를 스쳤습니다.
    "어쩌면... 내가 미친 걸지도 몰라... 아무 이유도 없이, 모든 동료들이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 버렸다고?"
    모든 게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골돌히 생각하자, 스탠리의 눈에 다른 이상한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왜 아래를 내려다봐도 발이 보이지 않는 걸까요?
    왜 가는 곳마다 지나친 문들은 자동으로 닫히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 방들이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은데, 단순히 반복되는 걸까요?

     

    실제로 우리는 보편적인 게임의 문법에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1인칭 시점의 3D 게임에서 자신의 다리가 보이지 않고, NPC에게 무기를 들이대거나 이상한 움직임을 보여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다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의 '게임'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현실에도 일어났다면, 분명 세계는 평면적이고 공허하며 괴이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스탠리는 게임 안에 존재하고 있기에, 현실과 게임의 법칙 사이의 괴리를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스탠리의 머릿속엔 무척이나 이상한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일찍이 자문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의 질문이었죠.

    "왜 내 머릿속에서 내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지시해대는 목소리가 들리는 거지?"

    이제 그 목소리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스탠리의 생각을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말들을 전하는 목소리를 듣는 것은 이제 스탠리에게 상당한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우리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내레이터가 스탠리의 삶을 소개하는 행위에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보통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설명해 주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니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계속해서 내 행동 하나하나 중계하는 존재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조현병 증상이겠지.

     

    만약 실제로 여러분의 행동과 생각을 하나하나 끊임없이 묘사하고 중계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아라. 매 순간이 두렵고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렵지 않을까?

     

    게임 안의 존재인 스탠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자신에게서 떠나가지 않는 내레이터의 목소리만큼 공포스러운 것이 없었을 것이다.

     

    SF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의 작가 '필립 K. 딕'은 현실을 이렇게 정의했다.

     

    당신이 더는 믿지 않게 되어도 떠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
    Reality is that which, when you stop believing in it, doesn't go away.

    - 필립 K. 딕

     

    어떻게든 이 비현실적인 현상을 합리화하기 위해 꿈이라고 여기며 깨어나도록 유도하지만, 스탠리가 속해 있는 '게임'이라는 현실은 그에게서 달아나지 않는다.

     

     

    스탠리는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누군가 날 좀 깨워줘! 내 이름은 스탠리야! 내겐 상사가 있어! 사무실도 있다고! 난 진짜야!
    제발 내가 진짜라고 누가 좀 말해 줘! 나는 진짜여야만 해! 꼭 그래야 해!
    아무도 내 말 안 들려?! 난 누구지? 난 누구냔 말이야?!"

     

    결국, 게임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쳐버린 스탠리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내레이터는 뜬금없이 '마리엘라'라는 여성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옮긴다.

     

     

    이것은 마리엘라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마리엘라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눈을 떴습니다.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물건을 챙긴 뒤 그녀의 직장을 향해 걸어갔죠.
    하지만 여느 때와 다르게, 이 날 그녀의 발걸음은 한 남자의 시체가 가로막았습니다.
    거리를 비틀거리며 헤매다가 혼잣말로 소리를 지르더니, 결국 도보에 쓰러져 숨을 거둔 시체였죠.
    그리고 그녀는 곧 돌아서서 전화로 구급차를 불렀지만, 아주 짧은 순간, 그 이상한 남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는 확실히 미친 사람임이 틀림없었어요. 그것만큼은 알고 있었죠. 누구든 미친 사람은 척 보면 티가 나니까요.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정상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했습니다.
    '나는 제정신이야. 나는 내 정신을 통제하고 있어. 나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허상인지 알아.'
    이렇게 생각하니 위안이 되었고, 어느 면에서는 이 남자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마리엘라는 죽은 스탠리의 몸을 보면서 자신이 제정신인 것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하지만 과연 시체를 보며 자신이 정상이라 다행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과연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스탠리가 어째서 미쳐버렸는지에 대한 원인은 안중에도 없고, 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하나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안도감을 얻는 사람을? 심지어 자신은 무엇이 허상이고 현실인지 구분할 줄 안다지만, 마리엘라 또한 '스탠리 패러블'이라는 가상 세계의 게임 NPC 캐릭터로 존재할 뿐이다.

     

    이 또한 '스탠리의 우화'로서, 게임과 현실의 괴리가 얼마나 이상해질 수 있는지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애초에 정상의 기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정신병 엔딩'이었다.

     


    Chapter 4. 게임 엔딩

    '게임'이 '게임'으로서 성립하기 위한 조건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독보적인 역할이긴 하지만, 게임의 존재 또한 게이머가 '플레이어'로서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 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게임 엔딩'을 살펴보자. 내레이터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샛길로 새다 보면, 게임 내에 완성되지 못한 미구현 구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 구역은 아직 다 완성되지도 않았어요, 당신은 애초에 여기 있어서도 안 되는 거였다고요.
    깨진 방, 노출된 개발용 텍스쳐... 이게 당신이 원한 건가요?...

    ...절 도와줘요, 스탠리. 당신의 그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욕망을 저에게 해명 좀 해 주세요.
    도대체 어떤 것이 이 게임을 나아지게 할까요? 뭘 보고 싶었던 거죠? 자동차? 스킬 트리?
    협조 좀 해 주세요, 당신은 여태껏 그 어떤 것도 알려준 게 없었잖아요.

     

    대체 게임의 어느 점이 불만이라서 계속해서 지시를 따르지 않는 건지 물은 내레이터는 스탠리에게 더 나은 게임 플레이 경험을 주기 위해 두 개의 문이 있던 방에 세 번째 문을 추가해 주거나, 세계 경쟁표를 추가하여 게임을 더 플레이하는 데 동기부여가 될 요소들을 추가해 주곤 한다.

     

     

    여기서 한 번쯤 고찰해 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게임을 계속해서 플레이하게 되는 '동기'란 대체 무엇일까? 타인과 경쟁해서, 또는 끝까지 진행하여 얻어낼 목표나 승리에서부터 재미를 얻기 위해?

     

    하지만 아까 보았던 엔딩처럼, 게임 내 설계와 시나리오대로 행동해서 얻어낸 승리엔 자유 의지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정해진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볼 수 있는, 떠먹여준 결말이 정말로 가치가 있는 걸까?

     

    아니면 단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차피 이마저도 게임이라는 좁고 유한한 세계의 진상을 알아내면, 거기서 동기는 금방 끊기게 된다.

     

    사람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이 또한 확실하게 규정이 되지 않은 영역이기도 하다.

     

     

    이후 내레이터는 자신이 개발하던 프로토타입 게임을 보여준다. 내레이터의 말에 따르면 이 아기 게임은 가정생활에 대한 고통이라는 예술계가 주목할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4시간 동안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한다.

     

    아기 게임이 시작되면 신경을 곤두세우는 아기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고, 버튼을 누를 때마다 시끄러운 버저음이 들려 10초도 되지 않아 게임을 그만두고 싶은 욕구를 마구 부추긴다. 심지어 중간에는 매크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난이도를 추가해서 멀티태스킹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아기 게임 엔딩을 보려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쉼 없이 계속해서 4시간을 플레이해야 한다! 그 엔딩을 볼 거면 유튜브로 보든지, 아니면 웬만큼 각오를 가지고 해야 할 것이다.

    결국 아기 게임을 플레이하기를 포기하면, 내레이터는 그렇게나 자신의 게임이 싫었다면 남이 만든 게임이나 하라며 타 개발사의 게임을 플레이시켜준다.

     

     

    첫 번째는 '파이어워치(Firewatch, 2016)'로, 산불을 감시하는 게임이다. 이 새로운 이야기를 탐색하기 위해 이 감시탑에서 내려가 숲 속으로 빠져나가 보았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통제' 역할을 맡고 있는 내레이터에겐 오픈 월드 게임에 어울리지 않았고, 결국 스탠리가 숲 속에 더 들어가기 전에 벽을 쳐서 막아버리곤, 공간을 멀리 벗어날 일이 없는 큰 벽이 있는 게임을 실행시킨다.

     

    여담으로 2013년작 HD 리메이크판에서는 이 파트에서 마인크래프트가 나왔는데, 그때도 마찬가지로 내레이터가 게임이 너무 광활하고 넓다는 이유로 5점 만점에 1점을 줘버린다.

     

     

    이번에 보여준 게임은 '로켓 리그(Rocket League, 2015)'로, 자동차로 축구하는 게임이다.

     

    여기서 내레이터의 말에 따라 공놀이를 해본다든지 할 수 있는데, 계속해서 재미있게 혼자서 축구 게임을 하고 있다 보면 내레이터가 심통이 나서 축구공을 전부 치워버리곤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다.

     

    당신은 저 같은 사람의 통제하에 있어야 해요. 규칙이나 통제 없이는 비디오 게임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요.
    그래요, 그게 바로 저입니다. 저는 구조물이자, 당신의 목적의식이죠.

     

     

    그리고 내레이터의 존재에 싫증이 나서 멋대로 골대 안으로 떨어져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내레이터가 보여준 타인이 만든 게임에서 멋대로 벗어나면, 게임의 뼈대만 남아 있는 개발 구역으로 떨어지게 된다.

     

     

    거기서 더 깊숙한 곳으로 떨어지면 (스탠리 패러블 2011년 구작 모드 버전의) 어두운 사무실에 홀로 갇혀버리고 만다.

    그렇게 스탠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허 속에서 헤매고 다닐 즈음 화면이 암전되며, 내레이터의 설명이 시작된다.

     

    그가 뭘 찾았는지 궁금하군요.
    만약 그가 원했던 게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었다면, 뭐, 아마 지금쯤 이뤄냈겠죠.
    저 아래에... 그가 어디 있든 간에 말입니다.
    제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건지 그도  이해하게 될 겁니다. 제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마지막에 모든 일을 전부 마무리 지어주며, 혼돈과 두려움, 그리고 혼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존재 말입니다.
    그게 바로 저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이죠.

     

    이 엔딩 루트를 따라가면서, 우리는 스스로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나만의 길을 가기 위해 내레이터(=시스템)의 말을 계속해서 무시해왔다.

     

    하지만 게이머가 '플레이어'로서 존재하려면 게임을 제어해 줄 시스템이 필요하다.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플레이어는 그저 공허한 가상의 공간 안에 갇힌 의미 없는 존재가 될 뿐이니까.

     

    그렇게 게임의 시스템과 플레이어는 둘 중 하나라도 없다면 존재로서 성립하지 않는 상호 보완적인 존재임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게임 엔딩'이었다.

     


    Chapter 5. 혼란 엔딩

    우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 중 하나에는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결말을 보기 위해서든, 타인과 경쟁해서 이기기 위해서든, 그 어떤 목표가 있든 간에 우리는 무언가를 달성하고 얻어내기 위해 게임을 계속해서 플레이한다.

     

    하지만 만약 게임에 '목표'가 사라진다면, 게임의 형태는 어떻게 변할까? 이와 관련된 '혼란 엔딩'을 살펴보도록 하자.

    오른쪽 루트에서 샛길로 새다 보면, 의도치 않게 '자유 엔딩'에서 보았던 모니터실을 발견하게 된다.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이건 아니야!
    당신은 아직 여기에 오면 안 돼요! 스포일러라고요! 스탠리, 빨리 눈을 감아요!

     

    확실히 우린 올바른 서사를 쌓은 뒤 모니터실을 발견한 것도 아닌, 뜬금없이 중요한 장면을 미리 봐버리고 말았다.

    당황한 내레이터는 스포일러로 망쳐진 스토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며, 강제로 게임을 재시작해버린다. 하지만...

     

     

    내레이터가 게임을 재시작해도, 완전히 게임이 재시작된 것이 아닌, 두 개의 문이 있던 방이 기묘하게 변하였음을 알아챌 수 있다.

    열린 문이 많아져 갈 수 있는 길이 다양해졌어도 똑같은 장소를 맴돌며 갈팡질팡할 뿐, 별다른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는다.

     

     

     

    당황한 내레이터가 한 번 더 게임을 재시작해 보지만, 문이 아예 사라져버린 데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봐도 이상하게 변해버린 막다른 길만이 있을 뿐이다.

    이는 초반에 올바른 루트를 통해 이야기를 이어나간 것이 아닌, 뜬금없이 당한 스포일러로 인해 목표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내레이터가 짠 정석 스토리대로라면, 스탠리는 사라진 동료를 찾기 위해 길을 걷다 정신 지배 기관을 발견하고, 사실 그동안 자신이 정신 지배를 당하고 있었다는 반전이 드러나는 내용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도중에 메인 스토리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모니터실을 발견해버렸고, 결국 그 스포일러의 내용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리저리 배회하다 보니 계속해서 원래 이야기의 목적과 멀어지며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내레이터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스토리를 어떻게든 마무리해 보려 '네가 이겼다' 식으로 마무리 지어보려 하지만, 역시 정신승리일 뿐이란 걸 부정하긴 어려운지 게임을 다시 재시작하게 된다.

     

     

     

    좋았어, 해결책이 떠올랐습니다.
    이번에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The Stanley Parable 어드밴처 라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냥 라인™을 따라가면 됩니다. 간단하죠?

     

    그렇게 자신의 역할은 내려놓고, 길을 안내해 줄 어드벤쳐 라인을 고용한 내레이터.

    어드벤처 라인을 따라가며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스탠리와 함께, 내레이터는 게임 속 '모험'이라는 개념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이야기가 목적지에 없더라도,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목적지가 없는 이야기를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우리의 여정에는 자연의 섭리로서 필연적으로 목적지가 나타날 거라고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내레이터의 기묘한 생각의 흐름을 따라갈수록, 어드벤처 라인의 선도 기묘하고 이상한 형태로 구부러지고, 공간 또한 왜곡되기 시작한다.

     

    내레이터가 말한 대로 우리가 '게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목적 없이 앞으로 나아가 봤자 같은 자리를 맴돌 뿐이다. 모험은 현실 세계에서나 먹히는 개념일 뿐, 어쩌면 게임만큼이나 닫힌 세계에서 모험이라는 개념만큼 의미 없는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무언가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모호한 의문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 게임 속 세계의 한계를 깨닫게 되면 실망하게 될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결국 라인™조차도 이야기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다시 스포일러가 그득한 모니터실을 향해버렸고, 결국 화가 난 내레이터는 게임을 또 한 번 재시작하게 된다.

     

     

     

    그거 알아요, 스탠리? 어드벤처 라인™ 따위는 잊어버리자고요. 그게 도대체 우리에게 해준 게 뭐죠?
    우리는 똑똑한 사람이잖아요, 그렇죠? 우리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면 되지 않나요? 뭔가 흥미롭고, 대담하고, 신비롭게 말이에요.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봤자 막다른 길이 놓여 있을 뿐이고 어드벤처 라인조차 도움 되지 않는다면, 아예 새로운 길로 가서 우리만의 이야기를 창조해나가는 건 어떻겠냐는 내레이터의 권유에 따라 그동안 계속 닫혀 있었던 문을 통해 전혀 다른 장소로 이동해 보기로 한다.

     

     

     

    그렇게 도착한 방에서는 처음 두 개의 문이 있던 방처럼 문이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내레이터가 온갖 괴상망측한 논리를 들어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 보지만,

     

     

     

    정작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왼쪽 문이나 오른쪽 문이나 이어지는 길은 똑같았다.

    게다가 심지어 그 앞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로 '혼란 엔딩'의 진행 계획표였다.

     

    그럼 이게... 결국 그거라는 건가요? 이 모든 게 하나의 커다란 엔딩이라고요?
    그리고 우리가 게임을... 뭣... 여, 여덟 번 재시작하기로 되어있다고요?
    정말로 전부 이렇게 흘러가게 되어있던 거라고요? 모든 게 다... 예정되어 있던 건가요?

     

    그렇다. 그동안 내레이터와 함께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게임을 수차례 재시작하고 원래의 길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다른 장소로 이동해 보기도 했던 모든 행동이 전부 '게임의 설계'인 것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싸워왔던 내레이터 또한 '게임' 내에 존재하는 시스템의 일부로서, 게임이라는 공간 안에 설계대로 통제되고 있었을 뿐이었다.

     

    플레이어들은 '자유도가 높은' 게임, '선택지가 많은' 게임을 원하고 실제 일부 게임 개발자들도 자신의 게임을 그런 식으로 홍보하곤 하지만, 프로그램의 설계로서 제작된 '게임'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자유'란 그저 허상의 존재일 뿐이란 걸 잊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우리가 진행한 위치는 네 번째 재시작 부분이고, 망연자실한 내레이터가 계획표대로 게임을 재시작하지 않겠다며 버텨보지만 결국 게임은 시스템에 따라 강제로 재시작되며 내레이터 또한 기억을 잃고 첫 대사인 '모든 동료들이 사라졌군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를 말하는 것으로 혼란 엔딩의 분기는 종료된다.

     


    Chapter 6. 우주 자살 엔딩

    혼란 엔딩에서 보았던 것처럼 게임이라는 공간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 보았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이미 전부 정해진 길이 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걸 알고 실망해버리기 이전에 괴테 소설 <파우스트>의 대사인 "멈추어라! 넌 정말 아름답구나!(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처럼, 게임의 진행을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멈춰버린다면, 게임은 그 자체로 유토피아가 되는 걸까?

     

    이와 관련된 '우주 자살 엔딩'에 대해서 알아보자. 내레이터의 지시를 계속해서 무시하고 샛길로 새다가, 마지막에서야 아름다운 걸 보여주겠다는 그의 말을 들어주면 볼 수 있는 엔딩이다.

     

    참고로 이 엔딩의 공식 명칭은 '젠딩 엔딩(Zending Ending)'인데, 이걸 뭐라고 번역하기도 애매해서 공식 번역 나오면 그걸로 수정하도록 하겠다.

     

     

    여태껏 제가 진심으로 당신이 행복하길 바랐다는 걸 아시겠나요?
    문제는 이 모든 선택에 있어요. 우린 항상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어떤 곳에 가기 위해, 당신이 지금 하는 것처럼 달리고. 또 달리고, 계속해서 달리고 있죠.
    이게 우리를 죽이고 있다는 걸 모르시겠나요, 스탠리? 전 그저... 이게 멈췄으면 좋겠어요.
    저는- 우리 둘 다 행복할 수 있을 거예요, 그저... 멈추기만 한다면요.

     

    내레이터가 무언가 보여주겠다며 새로운 길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어 그 안으로 들어가자 보인 것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빈 공간이었다.

     

     

    이거죠! 좋았어! 오,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그렇죠?
    만약 여기에, 이 순간, 이 장소에 계속 머물기만 한다면-
    스탠리, 전 지금... 행복해요. 지금 정말로 행복해요.

     

    확실히 이 공간은 아름답긴 하지만, 계속 이 공간에 있다 한들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소용인가. 시간의 흐름조차 의미 없는 이 게임이라는 닫힌 세계에 그대로 갇혀 있을 뿐이다.

     

    이 텅 빈 우주 공간에 질리기 시작할 즈음 자리를 벗어나 열려 있는 복도를 따라 이동하자, 꼭대기가 막혀있지 않은 계단이 있는 방이 나타난다.

     

     

     

    어, 안 돼요! 저 계단에 가까이 가지 말아요!
    만약 당신이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게임은 초기화되어버릴 거라고요! 이 모든 걸 잃게 된다고요!

     

    내레이터의 말을 무시하고 계단을 꼭대기 위까지 올라가 보자, 거기에는 난간으로 막혀있지 않은 끊긴 길만이 존재했다.

     

     

     

    제발, 안 돼요! 스탠리, 여기 머물게 해 줘요! 이곳을 제게서 빼앗아가지 말아줘요!

     

    내레이터는 울부짖으며 스탠리에게 제발 계단에서 떨어져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하지만 다시 계단을 내려가 돌아가 봤자 같은 우주 공간만 있을 뿐,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예쁜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은 상태이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해낼 수 있다. ESC를 눌러 재시작하기를 누르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동안 게임이 강제로 재시작되는 때는 스탠리가 죽었을 때에도 포함된다는 것을.

    그렇게 계단에 꼭대기에서 떨어져 자살을 유도해 보지만, 계단은 생각보다 높지 않아 죽는 것에는 실패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맺음을 맺으며 게임을 재시작하려면 스탠리가 죽을 수밖에 없다. 내레이터가 그만둬달라며 울부짖든 말든, 계단 꼭대기에서 추락할 때마다 스탠리의 몸이 부서져서 움직임이 느려지든 말든, 이 이야기의 끝을 맺기 위해 우리는 의식적으로 자결을 택하게 된다.

     

     

    끝난 건가요? 게임이 재시작되겠군요, 그렇죠? 저도 돌아가게 되는군요.

     

    그렇게 스탠리의 몸이 쓰러지고, 의식이 서서히 아득해지며 게임은 강제로 재시작된다.

     

    게임이란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멈추어봤자 이 또한 나의 자유의지와 함께 좁고 납작한 세계에 구속되어 있을 뿐인, 껍데기뿐인 공간임을 보여주는 우주 자살 엔딩이었다.

     


    Chapter 7. 아파트 엔딩

    '게임 엔딩'에서 보았듯이 프로그램이 게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존재가 필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제성'의 성질 또한 띠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강제성은 상황에 따라 한없이 잔혹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와 관련된 아파트 엔딩의 내용을 한 번 살펴보자. 내레이터의 명령을 계속해서 거부하다가, 화물 운송기 너머에 있는 전화를 받으면 스탠리의 집으로 이동하여 볼 수 있는 엔딩이다.

     

     

    이것은 스탠리라는 남자의 죽음에 관한 매우 슬픈 이야기입니다.
    스탠리는 꽤 지루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직장을 가지고 있었고,
    그가 누르는 모든 버튼은 하찮은 그의 존재를 상기시킬 뿐이었죠.

     

    내레이션이 나올 때마다 플레이어는 강제로 화면에 띄워지는 텍스트대로 버튼을 눌러야만 다음의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다.

    다른 게임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게임을 진행하려면 시스템이 명령하는 대로 버튼을 눌러야만 한다는 법칙을 이전까진 크게 의식하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불합리하게 느껴지더라도 시스템의 설계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게임의 특성 중 하나인 '강제성'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일에 환상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그는 어느 날 일하던 도중, 책상에서 일어났더니, 모든 동료와 상사,

    건물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다고 상상했습니다.

    그 생각은 그를 매우 흥분시켰죠.

    그래서, 그는 더 나아갔습니다. 둘 중 하나로 들어갈 수 있는 두 개의 열린 문 앞에 도착한 자신을 상상했죠.
    마침내! 선택의 시간이었어요!
    각 문 뒤에 뭐가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의 결정이 뭔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환상적이었죠!

     

    실제로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 무언가를 해낸 것도 아닌 버튼들을 계속 눌러대고 있을 뿐이며, 게임에서 일어난 내용들은 화면에서 일어난 가상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게임을 하면 무언가 대단한 걸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 안에서 행동하는 것, 선택하는 것 하나하나가 정말로 의미가 있을 거라 여기게 된다. 그리고 게임을 종료하면, 환상 따윈 존재하지 않는 딱딱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는 이런 환상적인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길과 목적지로 채워 넣기 시작했습니다.

    한쪽 길을 따라 내려가면 모니터와 정신 지배 장치들로 가득 찬 거대한 원형 방이 있었고,
    다른 쪽 길로 내려가면 여러 방향으로 나아가는 노란색 라인™이, 또 다른 쪽 길로 내려가면 아기가 있는 게임이 있었죠.
    그는 이 모든 걸 통틀어... 스탠리 우화(The Stanley Parable)라고 불렀습니다.

    이건 정말 멋진 환상이어서, 그는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체험했죠.
    그리고 또다시, 한 번 더, 계속해서 체험하며 이것이 영영 끝나지 않기를 속절없이 바라며, 항상 이토록 자유로운 기분이길 원했습니다.
    분명히 저 새로운 길에는 답이 있을 거야! 안 그래? 아마 한 번만 더 플레이한다면...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는 대사이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는 결말을 보기 위해 덧없는 희망을 붙들며 존재하는 모든 갈림길을 지나가 보며 끝없이 게임을 반복해서 체험하려는 우리의 모습이지 않은가.

     

    또한 화면에 떠오르는 명령대로 버튼을 누를 때마다, 스탠리의 집이 점점 처음에 있던 사무실로 변해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저는 그에게... 이 세상에선 그는 관찰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말해주려 노력하고 있어요.

    여기에 더 있는 한, 그는 천천히 자신을 죽이고 있는 거라는 걸 말이에요.

    하지만 그는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겠죠. 멈추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규칙들은 제가 정하는 게 아니에요. 저 또한 스탠리처럼 그저 의도된 역할을 해낼 뿐이죠.
    우리 둘은 별로 다르지 않네요.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내레이터 또한 게임의 스토리를 진행하는 진행자적 존재일 뿐이고, 모든 건 게임의 프로그램 또는 시스템에 따라 달려있을 뿐이다.

    게임의 NPC 또한 게임 개발자의 의도대로 역할로서 움직일 뿐이며, 마찬가지로 플레이어의 행동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어떤 상황이 있더라도, 플레이어나 게임 캐릭터는 개발자가 설계한 프로그램대로 밖에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죽으라는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더라도 강제로 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게임 속 프로그램이라는 절대적인 자유의 억압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Chapter 8. 박물관 엔딩

    내가 선택한 길이라도 이미 정해진 결말만이 존재하고 절대적인 프로그램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면, 결국 이 세계란 대체 무슨 의미이며, 진실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된 박물관 엔딩을 알아보자. 왼쪽 루트에서 정신 지배 기관 입구 앞에 있는 탈출구로 향하는 갈림길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엔딩이다. 이 길로 갔다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내레이터의 말을 무시하고 아래로 떨어지면 거대한 프레스기가 있는 곳으로 떨어지게 된다.

     

     

    기계가 웅웅거리며 작동하기 시작하고 스탠리의 죽음이 점점 다가오자, 그는 인생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탠리는 전체적인 상황을 보지 못합니다. 평생을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편협한 시야 속에 갇혀 세상을 바라보았기에, 이야기의 진실을 모르죠.
    아마도 그의 죽음은 장님의 눈알을 뽑아내는 것과 같이 큰 손실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체념하고 짧고 알량한 삶의 잔인한 결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잘 가요, 스탠리.

     

    그렇게 점점 프레스기에 가까워지며 꼼짝없이 깔려 죽기 직전인 그 순간-

     

     

    "잘 가요, 스탠리!" 내레이터가 외쳤습니다. 스탠리가 대책 없이 거대한 금속 압축기로 빨려 들어가는 동안 말이죠.
    그 짧은 찰나의 순간, 기계는 스탠리의 몸 안에 있는 모든 뼈마디를 으스러뜨렸고, 그는 즉사했습니다.

     

    갑자기 이야기가 일시정지되고, 내레이터가 여성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동안 남성 내레이터가 프로그램 설계의 일부로서 스탠리의 위에서 그의 이야기를 내레이션 했던 것처럼, 남성 내레이터 위에도 또 다른 존재인 '여성 내레이터', 즉 개발자가 존재했던 것이다.

     

    여성 내레이터는 스탠리가 프레스기에 깔려 죽기 직전에 시간을 멈추고 우릴 풀어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보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자, 게임의 제목인 'THE STANLEY PARABLE'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이는 쪽으로 이동해 보기로 한다.

    여기서 한번 고찰해 보자면, 웬만한 작품에선 주인공의 이름이 타이틀이나 영화가 아닌 이상 그 타이틀이 게임 내에 등장하는 일은 적다. 하지만 그 타이틀이 제대로 보인다는 것은 게임에서 잠시 벗어나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일종의 '메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불과 몇 분만 있으면 스탠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히 살아 있는 모습으로 사무실로 돌아가 게임을 재시작하게 되겠죠.
    내레이터는 도대체 그가 무엇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던 걸까요?

    내가 걸을 수 있는 모든 길이 나를 위해 미리 만들어져 있다면, 죽음은 무의미해지고, 삶 또한 마찬가지겠죠.
    이제 아시겠습니까? 스탠리는 게임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실제로 엔딩 분기 하나가 종료되면, 게임은 자동으로 재시작되어 우리는 다시 스탠리의 사무실로 돌아가게 된다. 현실에서는 단 한 번뿐인 삶이기에 생사와 관련해서는 더더욱 신경 쓰며 살아야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선 죽어봤자 다시 처음 시점으로 살아 돌아오기에 죽음과 삶의 의미가 크게 없다. 좀비 게임에서 좀비에게 물려 죽어도, 로딩 한 번으로 다시 이전의 시간대로 살아 돌아오면 그만이다. 어쩌면 그 어떤 매체들보다도 게임의 세계만큼 생명이 경시되는 곳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게임 타이틀 아래로 열린 문을 통해 들어가면, 2013년작 HD 리메이크판 스탠리 패러블의 개발 비화가 박물관 형식으로 전시된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 혼란 엔딩에서 이미 보았듯, 모든 게임에서 우리는 프로그램의 설계 안에서만 놀아나고 움직이고 있을 뿐임을 이로써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고 있다.

    참고로 여기엔 재미있는 개발 비화들이 적혀있으니 궁금하다면 설명란 하나하나 자세히 읽어보길 바란다.

     

    박물관의 출구 쪽으로 나가면 여성 내레이터는 개발자의 입장에서, (스탠리인) 나와 남성 내레이터의 관계를 바라보며 웃음짓는다.

     

     

     

    저 둘을 좀 보세요.
    서로 어찌나 망가뜨리고 지배하고 싶어하는지.
    그러면서 또 얼마나 자유를 갈망하는지를.

     

    그동안 게임에서 나 혼자 내레이터의 지시에 맞서 애썼던 것 같지만, 내레이터 또한 이러한 스탠리의 행동에 맞서 게임의 시스템을 통제하려 안간힘을 써왔다.

    우리는 게임 내에서 행동하고 플레이하는 것 이상으로, 게임의 시스템 또한 그런 플레이어에 맞춰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 알고리즘과 응답이 준비되고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잘 의식하지 못하고 망각해버리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출구의 레버를 OFF로 내리고 화면이 암전되며, 여성 내레이터가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 것이다.

     

    보이시나요? 둘이 서로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보이십니까?
    아니, 보이지 않으시겠죠. 때때로 그런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시점은 다시 스탠리가 프레스기에 깔려 죽기 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제 말을 들으세요, 저 둘을 구할 방법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둘 다 실패하기 전에 당신이 프로그램을 멈출 수 있어요.
    ESC를 누르고, '종료' 버튼을 누르세요. 이 게임을 이길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한, 다른 사람의 길로 빠지게 될 겁니다. 당장 멈추세요, 그것만이 당신의 진정한 선택일 겁니다.

     

    이때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여성 내레이터에 따라 게임을 종료하거나 재시작해서 탈출할 것인지, 아니면 게임에서 정해놓은 결말에 순응하여 그대로 프레스기에 깔려 죽을 것인지.

    그리고 게임을 재시작하지 않고 그대로 죽음을 선택하면, 처음 여성 내레이터가 말했던 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게임은 자동으로 재시작되고 스탠리의 사무실로 다시 돌아온다.

     

    왼쪽이 2013년작의 5년 동안, 오른쪽이 울트라 디럭스판의 10년 동안 스탠리 패러블을 플레이하지 않으면 달성되는 도전과제.

    여성 내레이터는 플레이어와 시스템의 끝없는 싸움을 멈추고, 그 둘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게임을 종료하는 것뿐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 게임에는 여성 내레이터의 조언에 부합하는 도전과제가 존재한다. 바로 'Go Outside(밖으로 나가기)' 도전과제로, 2013년작 HD 리메이크판은 5년, 울트라 디럭스판은 10년 동안 게임을 켜지 않으면 달성되는 도전과제이다.

    여담으로 이 엔딩은 울트라 디럭스판에선 프레스기에 깔려 죽으면 게임이 자동으로 재시작되지만, 2013년작 HD 리메이크판에서는 프레스기에 깔리면 스탠리의 몸이 완전히 죽어버려서 여성 내레이터의 지시대로 정말로 ESC를 눌러서 다시 시작하기를 눌러야만 게임을 리셋할 수 있었다.

    근데 그러다가 아예 게임 메인화면으로 나와버려서 게임 내 세이브 데이터가 날아가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바꾼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구작의 시스템이 좀 더 이 게임의 전체적인 메시지에 가까워서 좋았는데 아쉽다.

     

    참고로 둘째 줄 대사는 플랫폼마다 달라진다. PS4/PS5 버전이면 플레이스테이션을 끄라고 하고, XBOX 버전이면 XBOX를 끄라고 하고, 스위치 버전이면 닌텐도 스위치를 끄라는 대사로 나온다.

     


    Chapter 9. 선택 엔딩

    정말로 게임에선 무엇을 선택하든 이미 정해진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는, 의미 없는 선택만이 존재하는 걸까.

    그럼 아예 게임의 설계와 의도 내에 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틀을 깨버린다면, 게임의 형태는 어떻게 변할까?

     

    이와 관련된 '선택 엔딩'을 확인해 보자. 전화기가 있던 방에서 전화기의 전기 플러그를 뽑아버리면 볼 수 있는 엔딩이다.

     

     

    스탠리, 지금 전화선을 뽑은 거예요?
    안 돼, 그건 선택 사항이 아니었는데; 그걸 어떻게 한 거죠?
    당신 정말... 잘못된 선택을 하신 겁니까? 전 그게 가능했는지도 몰랐네요.

     

    그러자 내레이터는 전화선을 뽑는 행동을 할 가능성 자체를 생각해내지 못했다고 말하며, 스탠리가 게임의 설계 밖의 행동을 했음을 상기시켜 준다.

    또한 어떻게 그렇게 의미 있고 틀린 선택을 할 수 있는 거냐며 당황해하는데, 그 순간...

     

     

    당신은 스탠리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군요.

     

    내레이터가 스탠리의 정체를 정확히 직시한다. 스탠리 너머에 있는 플레이어의 존재를 알아챈 것이다.

    그렇다, 나는 전화기의 전기 플러그를 뽑아냄으로써 게임 시스템상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를 골라버린, 프로그램의 설계에서 벗어난 선택과 행동을 해버렸다.

    결국 내가 더는 게임 속 '스탠리'라는 역할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되었기에, 내레이터가 플레이어의 존재를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스탠리의 정체를 알아낸 내레이터가 게임 내에서 설계 밖의 말도 안 되는 선택 또는 행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교육용 비디오를 보여주고 나면, 전화기가 있던 방이 기괴하게 어그러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플레이어가 프로그램의 설계 밖의 행동을 하여 게임에 버그가 일어나고,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붕괴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그 어떤 게임이든 게임이 가장 온전한 상태로 존재할 때는 우리가 게임의 설계대로 움직이고 있을 때뿐인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2013년작 HD 리메이크판에서는 이것보다 더 기괴하게 어그러져 있었는데 울트라 디럭스판에 와서 너무 심심해진 것 같아 약간 아쉬운 부분이다.

     

    플레이어가 이런 식으로 게임 설계 밖의 행동을 계속했다간 게임이 붕괴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내레이터는 우리를 처음 두 개의 문이 있던 방으로 플레이어를 이동시키고 정석 플레이대로 가장 처음에 보았던 자유 엔딩을 통해 빨리 게임에서부터 내보내 주려고 한다.

     

     

     

    이제 명심하세요, 당신은 스탠리가 할 법한 일들을 그대로 행해야 해요.
    그 말은 즉, 책임감 있게 선택하고 항상 이야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세요.
    그냥 제 안내에 따르기만 하면 문제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미 한 번 내레이터를 끝까지 거부하고 게임 설계 밖의 행동을 한 나인데, 내레이터의 말을 들을 리가.

    이번에도 똑같이 내레이터의 지시를 거부하고 또다시 잘못된 선택지인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자 아까 왔던 길이 막혀 있는 데다 문과 사무실이 아까보다도 더욱 뒤틀리고 결국 게임 자체가 파괴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의 연속적인 버그를 유발하는 행동이 게임을 온전한 모습에서부터 벗어나게 만든 것이다.

    마지막에는 두 개의 문이 있던 방에 서 있는 스탠리와 그에게 지시를 내리는 내레이터를 천장 위에서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스탠리, 이건 중요한 일이에요. 이야기엔 당신이 필요해요. 당신이 결정을 내려줘야 한단 말입니다.
    당신 없이는 존재할 수도 없어요. 이해되시나요?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괜찮아요, 다 옳다고요; 틀린 답은 없어요.
    우린 협동할 수 있어요; 당신이 뭘 하든 받아들일게요.
    한 발짝만이라도 움직여 주세요, 제발요? 선택할 거죠?

     

    하지만 스탠리는 내레이터의 요구에도 꼼짝하지 않는다. 스탠리의 행동 하나하나 비꼬던 때와는 달리, 내레이터가 애걸복걸하며 불러도 스탠리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는 플레이어를 '스탠리'라는 캐릭터와 완전히 분리시킴으로써, 플레이어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면 게임 또한 존재로서 성립할 수 없음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내레이터는 자신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고 설계 밖의 행동을 해대는 플레이어에게 분노했다. 하지만 정작 그런 플레이어조차 없다면, 게임은 혼자 덩그러니 남아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데이터 쪼가리가 될 뿐이다.

     

    플레이어라는 존재가 있어야만 게임 또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상호적인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선택 엔딩'이었다.

    여담으로 이 엔딩을 볼 때만 크레딧이 나오는데,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게 진엔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스탠리 패러블에는 진엔딩이라는 개념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본 엔딩 하나하나가 전부 진엔딩이므로, 가장 마음에 드는 엔딩이 있을지언정 단 하나의 진엔딩이란 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알아뒀으면 좋겠다.

     

     


    마무리 / 다음 파트 예고

    스탠리 패러블의 기획은'게임의 프로그램이나 시스템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와, '어떠한 프로그램이게임이라는 매체로서 존재하기 위한 성립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RPG 게임에서 캐릭터를 생성하면 처음 만나는 지도자 NPC가 튜토리얼 진행을 위해 우리에게 길을 안내하며 따라오라고 말을 걸어온다.

    하지만 그 NPC의 말을 듣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거나 정반대의 길로 돌아가 버린다면?

    보통의 게임이라면 플레이어가 특정한 거리 내로 다가올 때까지 NPC는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겠지만, 스탠리 패러블은 그 플레이어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부분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플레이어를 기다리다 지쳐 먼저 가버린다든지, 어디로 가냐고, 방향은 이쪽이라고 다그치는 것처럼.

     

    또한 이 게임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플레이어의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노골적으로 전가한다. 플레이어로서 자신의 의지로 직접 결정한 선택은 결국 게임 내에 이미 전부 설계된 시스템으로 인해 다른 선택지들을 전부 앗아가고, 통제권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게이머들은 자신의 의지와 선택대로 게임을 이끌어나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우리의 결정은 또 다른 선택을 포기하는 것이며, 시스템은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설계 안에서 끝없이 맴돌고 있을 뿐임을 직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끝없이 반복한다.

     

    그러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부수고 설계 밖의 행동을 한다면? 말 그대로 게임 속에 버그나 오류가 일어날 수밖에 없고, 어쩌면 게임 속에 영원히 갇혀버리는 사고가 일어나버릴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플레이어의 자유 의지와 이미 확고히 정해진 프로그래밍대로 행동을 강제할 수밖에 없는 게임 시스템 사이의 충돌과 모순, 그리고 필연적인 관계성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우화가 바로 <스탠리 패러블>이다.

    누군가는 스탠리 패러블이라는 게임을 보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뭘 말하고자 하는 건데?'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액션성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 안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맴돌아 갇혀버린 느낌도 들 수 있다.

    하지만 그전에 스탠리 패러블의 스팀 페이지에 있는 공식 소개란과 설명을 한번 읽어보자.

     

    여러분은 스탠리로서 플레이할 것이고, 스탠리로서 플레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토리를 따라갈 것이고, 따라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택할 것이고, 그 선택은 스스로에게서 빼앗길 것입니다.

    게임은 끝날 것이고, 절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모순은 모순을 따르며, 게임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칙은 깨지고, 또다시 깨집니다.

    당신은 이곳에 이기러 온 것이 아닙니다.
    스탠리 패러블은 당신을 플레이하는 게임입니다.

    이 세계는 당신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천천히 탐험하다 보면, 의미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역설은 이해되기 시작할지도 모르며, 당신은 결국 강력해질 것입니다.

    게임은 당신과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닌, 춤을 추기 위해 당신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이 우화의 주제인 '게임'은 산업이 발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역이라 확실하게 규정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부터 시작해서 '스토리 게임'을 과연 게임으로 치부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저 인터랙티브 무비나 비주얼 노벨일 뿐인지에 대한 것도 사람마다 의견이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액션성이 없는 스토리 게임을 게임이라 여기고, 게임은 예술 따위가 아닌 그저 한낱 놀잇감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어떠한 프로그램이 '게임'이라는 매체로서 성립하기 위한 조건과 구성 요소는 무엇인가? 프로그램대로 이미 설계되어 있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며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전부 정해져 있는 끝에 도착하고, 자유 의지 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버튼을 눌러댄 결과를 '승리'라고 할 수 있는가? 결말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 게임이라면, 끝이 없고 무한히 플레이할 수 있다면 게임이 아니게 되는 걸까?

    목표가 사라진 여정을 모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타인과 경쟁할 수 있어야만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애초에 무엇을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스탠리 패러블은 더더욱 그 의문에 파고들어, 그러한 '게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과 고찰 그 자체를 게임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것에서부터 벗어나 제3자의 시각에서 표현한 '반-게임(Anti-Game)'이다. 무엇 하나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게임이라는 매체와 관련된 모든 의문을 한데 모은 미스터리하고 무한한 미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 '우화'인 것이다.

    당신은 스탠리 패러블에서 무언가를 해내려 하거나 이기려고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은 그저 당신과 함께 춤을 추기 위해 존재할 뿐.

    그러니 혼란과 의문에 맞서 안간힘 쓰지 말고, 온전히 그 게임의 형태 자체를 받아들이며 함께 어울려보기를 바란다.

     

    위 이미지는 공식 스탠리 패러블 포스터인데, 이것 또한 스탠리 패러블이라는 게임을 그 자체로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위 이미지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

     

    그것은 중요하다 /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건 말이 된다 /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신은 통제하고 있다 / 당신은 통제할 수 없다
    이 결정이 마지막이다 / 끝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상반된 문장임에도, 스탠리 패러블은 놀랍게도 저 모든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모순의 응집 그 자체이다.

    이렇게 2013년작 HD 리메이크판 스탠리 패러블에 존재했던 대략적인 해설을 마쳤다.

    Part 1에서는 2013년작 HD 리메이크판의 주제인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고찰"을 다뤘다면, 다음엔 울트라 디럭스판의 주제인 "확장판, DLC, 후속편에 대한 고찰"에 대해서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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